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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자에게 삼베 수의 입히는 것이 한국전통장례라고?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 가족 중 누군가 사망하여 장례식을 준비하다보면 상조회사와 장례업체에 따라 견적을 받고 비싼 가격에 당황스럽지만 유가족들은 대부분 장례업체가 요구하는 비싼 가격에 항의하지 않는다.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 – 삼베옷은 일제가 만든 작품 돌아가신 이에게 입히는 수의는 일제 강점기부터 삼베옷으로 탈바꿈을 하더니 재료비와 가공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 하지만 망자에게 삼베옷을 입히는 것은 한국전통장례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일제수탈의 흔적이기도 하다. 삼베옷은 망자의 자녀들이 입는 옷이었다. 망자는 평소 즐겨 입던 옷 중에서 정갈하고 깔끔한 것으로 골라 입히거나 특별히 비단옷을 지어 입히기도 했다.  안 그랬다면 가끔 발굴되는 무덤 속의 전통 옷들로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복식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한국전통장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장례업체들 한국의 대부분 장례업체들이 상업화가 되면서 전통장례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일제가 만들어 놓은 해괴한 장례절차를 만들어 ‘한국전통장례’라는 이름으로 상업적인 이용을 하고 있다. 이 결과 망자의 가족들이 입어야 삼베옷은 망자에게 입히고, 서양식 장례를 이상하게 점목해 유가족들에게는 검은 옷을 입히면서 일제식의 삼베 완장을 팔에 두르게 했다. 아래는 한국전통장례를 알리고 있는 장례단체의 안내 글이다. 검정양복을 입을 경우 왼쪽 팔에 완장을 착용합니다. 완장은 삼베로 만들어졌으며 검은 색의 줄이 그어져 있는데, 장례식장에서는 두 줄과 한 줄 그리고 무줄 완장을 착용합니다. 상주표시로 검은 줄을 넣습니다. 두 줄 : 상주가 착용 아들과 사위, 아들이 없을 시에는 장손이 착용한다. 한 줄 : 상주 이외의 형제 등 무줄 : 주로 손자들이 착용 이 단체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모든 절차와 의미가 한국전통장례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기간 우리 조상들이 체계화시켜 놓은 전통장례에 대해 깊은 고민이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장례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음식, 음식 독점권 박탈해야 오늘날까지 장례관련 법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더욱이 장례 기간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정해진 법이 없다. 유일하게 '사체는 사후 24시간 이후 매장이나 화장이 가능하다'라는 법령이 있지만 이 또한 1912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 취체규칙>을 여전히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장례식에 최대 지출 비용은 장례식장에서 무조건 선택해서 제공하는 음식 값이다. 다음이 장례식장 대여료다. 장례식장 음식 값으로 2000만원~3000만원이 지출되고 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에도 여전히 제사상 음식 재활용하며 유가족에게 폭리를 취한 장례업자부터 음식 값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보도가 꾸준히 나왔다. ■진짜 망자를 애도하는 장례식으로 거듭나야 유가족들은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고인에 대해 조용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고, 상조회사에서 도우미를 지원하지만 턱 없이 일손이 모자라 음식을 나르느라 2박 3일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장례업체를 개혁해 터무니없이 비싼 삼베 수의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망자의 수의는 집에서 망자가 평소 즐겨 입던 옷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전통장례와 그 의미가 맞다.   또한 장례업체가 시중 음식점 보다 비싸게 제공하고 있는 장례음식의 독점권을 박탈하고, 유가족들이 준비한 음식이나 다과 등으로 검소하게 제공하고 망자를 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 고종명
    • 장례
    2018-12-10
  • [발행인 캄럼] 테스트 2
    [월간 고종명=발행인 칼럼] 홈페이지 노출을 테스트하기 위한 기사샘플입니다.
    • 오피니언
    • 발행인 칼럼
    2018-11-29
  • [한국의료] 3. 보험 있어도 돈 없으면 힘들어요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 몇 년 전 A씨 아들은 눈이 살짝 내리는 오후, 학원에서 쉬는 시간 친구들과 잠깐 공원에서 놀다가 움푹 파인 곳에 발목이 끼이면서 발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월간 고종명 김재봉 편집국장   A씨는 아들을 데리고 즉각 가까운 정형외과에 입원절차를 거쳐 아들의 수술을 진행했다. 입원 3일째 되는 날 오전에 수술이 시작됐다. 다행히 학원에서 가입한 보험이 있었고, A씨도 아들의 부상을 대비해 가입했던 보험이 있었다. 병원입원은 먼저 접수창구에서 병원 접수비를 납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진찰을 받거나 수술이 시작도하기 전부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먼저 2~3만 원 정도의 접수비부터 무조건 납부를 해야 한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약 한 달간의 입원생활이 시작됐다. 발목부터 무릎까지 철심을 박아 넣은 상태에서 수술을 위해 상처를 낸 부분이 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치료도 병행됐다. 수술을 포함한 치료비는 100만원에 육박했다. 병원은 중간납부를 해야 한다고 알려줬고, 퇴원 이전에 병원비 전체를 납부해야만 퇴원이 됐다. 문제는 보험처리가 된다고 했지만, 병원비 전체를 환자 또는 보호자가 납부를 하고 증빙서류를 갖춰 신청을 해야만 보험회사에서 병원비로 지출된 비용을 약 한 달 후에 환자 또는 보호자 계좌로 입금해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재정이 부족한 서민들의 경우 보험적용을 받아도 일단 병원비를 자부담해야 보험을 통해서 보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큰돈이 들어가는 병원비 걱정에 보험을 가입했지만, 막상 병원비를 납부할 일이 발생하면 먼저 환자 또는 보호자가 먼저 병원비를 납부해야 보험회사로부터 병원비를 받을 수 있다. 결국 A씨는 아들의 병원비는 먼저 납부하고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각종 증빙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심사를 거쳐 약 한 달 뒤에 병원비를 되돌려 받았다. 제대로 된 보험체계라면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보험회사가 병원에 출동해 사실 확인을 하고, 접수비납부와 병원에서 진료비 납부를 요청할 때마다 중간예납과 퇴원시 진료비 납부 등을 일괄적으로 처리해줘야 한다.
    • 오피니언
    • 칼럼
    • 편집장 칼럼
    2018-11-26
  • [한국의료] 2. 돈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스페인어: Pandemia de gripe A (H1N1) de 2009)은 2009년 3월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형 H1N1 아종의 변종에 의해 발생했다. 최초 발병은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를 포함한 3개 주에서 발견됐으며, 몇 주 후 미국에서도 발견됐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월간 고종명 김재봉 편집국장   신종플루에 감염되면 대표적인 증상으로 급성 열성 호흡기 증상 즉 몸에 발열이 난다. 한국에서는 체온이 37.8도를 넘는 것과 다른 증상을 기준으로 의료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종플루 환자의 10-20%는 발열증상이 없거나 약한 발열증세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증상은 급성호흡기 증상(기침·목아픔·콧물·코막힘 중 하나)이며, 오심, 무력감, 식욕부진, 설사, 구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돈 없으면 고열이 나도 진료거부 유명인들부터 대한민국 전국이 신종플루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우리집 큰 아들도 신종플루에 걸렸다. 토요일 저녁부터 기침이 있고 체열이 37~38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외부에 있던 내게 아내의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대로 마스크를 한 채 택시를 타고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진찰을 받으라고 했다.   20분 뒤 아내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한림대학교병원에서 신종플루검사를 받기위해 먼저 1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납부해야 진찰을 해주겠다고 했단다. 아내는 그 당시 5만원의 비용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 인터넷뱅킹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던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측에 양해를 구했지만,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병원은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를 앞에 놓고 고액의 접수비를 먼저 납부하라는 대답만 했다.   결국 아내는 고열에 시달리는 큰 아이를 데리고 동네 ‘ㄱ가정의학병원’을 찾아 독감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진단결과 신종플루 A형으로 판명됐지만 타미플루 처방은 받지 않았다. ‘ㄱ가정의학병원’은 해열제와 적절한 치료방법으로 신종플루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해 좋은 결과를 기록했다.   ■돈만 밝히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30,000원과 3,000원, 이는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과 동네 병원의 진료비 차이다. 똑같은 감기에 걸려도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은 접수비와 진찰료를 포함해 30,000원이 넘는 비용이 청구된다. 하지만 동네 병원은 접수비 항목이 없다. 접수와 동시에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들면 기본 진료비는 3000원이 청구된다.   대학병원은 의과대학 교수들의 특진비를 필수항목으로 추가하고 있다. 교수들의 특진은 선택사항이지만, 대부분 대학병원에서는 교수가 아닌 의사들이 없을 정도다. 진료실마다 ‘교수’ 타이틀을 단 의사들이 진료를 보고, 진료비 청구서에는 ‘특진비’가 자동으로 청구되고 있다. 종합병원에서도 특진비 챙기기는 비슷하다.   촌각을 다루는 위급상황에 병원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해도 먼저 치료가 아닌, 접수를 이야기한다. 의료비대불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병원들은 창구에서 접수비 납부를 할 것을 안내한다.   실제 많은 경험자들은 응급상황에서 병원을 찾았지만, 응급의료서비스는 받지도 못하고, 응급실 담당자에 친절한 접수비 납부 안내를 먼저 받는 경우가 많다. 병원 담당자는 보호자 중 한 명에게 친절하게 창구에 가서 접수비 납부를 확인해달라고 안내한다.   응급상황에 실려 온 환자의 치료가 우선인지, 진료비 납부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인지 모르는 대한민국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유물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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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2
  • [한국의료] 1. 돈 없어도 병원 가서 편안하게 치료 받아요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1993년부터 5년간 영국에서 살면서 놀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암이 걸려서 수술을 하든, 1년 365일을 병원에 입원을 해도 병원비가 무료라는 사실이었다. 월간 고종명 김재봉 편집국장     또한 병이 걸려야 병원에 가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동네에 의사들이 일정한 가정을 묶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매달 정해진 날에 가정주치의를 만나 면담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받았고, 모든 질병관리는 사전 예방차원에서 다루고 있어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없앴다는 것이었다.   의료뿐만 아니라, 교육도 무료였다. 내가 살던 당시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무상교육(한국인도 영주권만 있으면 대학도 무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같이 살던 선배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니 우편으로 안내문이 먼저 발송되고 약속된 날짜에 맞춰 담당자들이 가정을 방문해 아이가 입학할 유치원부터 교육과정 및 유치원과 초등학교 연계내용 등 아이가 영국에서 받을 교육에 대해 상세하게 상담을 해주고 돌아갔다.   어느 날은 위경련이 새벽에 일어나 ‘999’으로 전화를 했다. 구급대가 집에 도착해 내가 거주하던 동네 중급병원으로 이송했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3명의 대원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그 중 한 명이 계속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 사태를 파악하고, 병원에 도착하자 담당의에게 그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물론 병원비는 없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퇴원을 했다. 퇴원하기 전 병원에서는 처방전을 발급하고 위층에 올라가 약을 타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다만 약값은 약 5파운드 정도 납부했는데, 내가 살던 당시 영국의 1파운드는 한국 돈으로 약 1200원 정도 했다. 하지만 영국 런던에서 5파운드는 1파운드 동전 5개의 가치였다.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의료서비스를 유학생이란 신분으로 인해 대략 6파운드의 국가의료보험비(NHS) 정도만 납부해도 영국인들과 동일하게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의료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어도 유학생비자가 있다는 것 하나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보험이 있어도 환자가 먼저 병원에 진료비를 납부하고 나중에 보험으로 처리하는 일도 없고, 한국처럼 각종 민간보험을 통해 온갖 질병에 관한 보험을 추가로 가입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영국에서 5년을 사는 동안 ‘999’으로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간 일이 두 번 있었다. 걸어서 5분이면 도서관이 있듯이 병원도 일정한 구역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도록 위치해 있어서 구급차를 타고 오래시간 달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한 가정을 붕괴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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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장 칼럼
    2018-11-20
  • [김재봉 칼럼] 志于學에서 考終命까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월간 고종명=김재봉 편집국장]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從心所欲不踰矩라.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춘추전국시대 사람이니 그 당시 인생 70대면 장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역을 하면 “나는 십오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그래서 삼십대에 홀로설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사십대에는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 오십에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됐으며, 육십에는 귀가 순해졌으며, 칠십에는 욕심대로 행동을 해도 결코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없었다”란 의미다.   그럼 먼저 공자가 나이를 이야기한 위의 말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자. ‘吾十有五而志于學’ 십오세라고 했지만 이는 십대에서 이십대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나이임을 알려주는 말이다. 이 시기를 잘 채우지 못하면 삼십이 되어서도 결코 모든 일에 홀로서기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三十而立’ 이란 말을 살펴보자. 먼저 독자는 이 말 또한 공자가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그 시대는 남자 중심의 세계였으며, 공자는 남자였다는 것을 당연히 의미한다. 최소한 한 가정을 책임지고 뜻을 세워 나라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삼십대가 됐을 때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충족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뜻을 펼쳐나가는데 늘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어간다고 느낄 때 어디선가 유혹의 손길이 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40대에 이런저런 사회적 유혹은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사회초년생을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뜻을 주장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 때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나라가 섰다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한 나라가 사라지기도 했다. 춘천전국시대 이전에는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제후국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나라를 중심으로 제후국들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조성하고 있을 때 기본 교재 역할을 한 것이 주나라의 예법을 기록한 주례(周禮)였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러움은 주나라의 예법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 오십이 됐을 때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주례를 회복해 천하를 태평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자의 ‘五十而知天命’에서 지천명(知天命)은 단순히 남자가 오십이 됐을 때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 즉 주례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정치상황에서도 공자가 생각했던 지천명(知天命)은 어느 나라에서나 반드시 필요하다. 백성은 걱정염려 없이 평안한 삶을 바라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지천명(知天命)을 이루기 위해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육십이 되어서도 지천명(知天命)은 이루지 못했다. 그런 공자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천하를 유리방황하지만, 듣는 귀는 이제 점점 익어가는 벼처럼 무엇을 들어도 순하게 듣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공자는 ‘六十而耳順’이라고 언급하며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를 보여주곤 한다.   어쩌면 구약성경의 솔로몬이 전도서를 지으며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것을 공자도 느꼈는지 모르겠다. 공자는 드디어 칠십세가 되어서 ‘七十從心所欲不踰矩’라고 말한다. 마음 속에서 어떤 욕구가 일어나 행동을 해도 결코 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종묘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 시간은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누구도 이탈할 수 없는 경기장에 놓인 것과 같다.   인간의 수명이 많이 길어져 이제는 많은 이들이 칠십을 넘어 팔순과 구순을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과학은 얼마나 많이 발전해 있을지 가늠조차 힘든 빠른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수명이 얼마나 늘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는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기본적인 욕구의 마지막 종착지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제명대로 살다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인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마지막 소박한 꿈이며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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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장 칼럼
    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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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자에게 삼베 수의 입히는 것이 한국전통장례라고?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 가족 중 누군가 사망하여 장례식을 준비하다보면 상조회사와 장례업체에 따라 견적을 받고 비싼 가격에 당황스럽지만 유가족들은 대부분 장례업체가 요구하는 비싼 가격에 항의하지 않는다.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 – 삼베옷은 일제가 만든 작품 돌아가신 이에게 입히는 수의는 일제 강점기부터 삼베옷으로 탈바꿈을 하더니 재료비와 가공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 하지만 망자에게 삼베옷을 입히는 것은 한국전통장례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일제수탈의 흔적이기도 하다. 삼베옷은 망자의 자녀들이 입는 옷이었다. 망자는 평소 즐겨 입던 옷 중에서 정갈하고 깔끔한 것으로 골라 입히거나 특별히 비단옷을 지어 입히기도 했다.  안 그랬다면 가끔 발굴되는 무덤 속의 전통 옷들로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복식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한국전통장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장례업체들 한국의 대부분 장례업체들이 상업화가 되면서 전통장례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일제가 만들어 놓은 해괴한 장례절차를 만들어 ‘한국전통장례’라는 이름으로 상업적인 이용을 하고 있다. 이 결과 망자의 가족들이 입어야 삼베옷은 망자에게 입히고, 서양식 장례를 이상하게 점목해 유가족들에게는 검은 옷을 입히면서 일제식의 삼베 완장을 팔에 두르게 했다. 아래는 한국전통장례를 알리고 있는 장례단체의 안내 글이다. 검정양복을 입을 경우 왼쪽 팔에 완장을 착용합니다. 완장은 삼베로 만들어졌으며 검은 색의 줄이 그어져 있는데, 장례식장에서는 두 줄과 한 줄 그리고 무줄 완장을 착용합니다. 상주표시로 검은 줄을 넣습니다. 두 줄 : 상주가 착용 아들과 사위, 아들이 없을 시에는 장손이 착용한다. 한 줄 : 상주 이외의 형제 등 무줄 : 주로 손자들이 착용 이 단체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모든 절차와 의미가 한국전통장례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기간 우리 조상들이 체계화시켜 놓은 전통장례에 대해 깊은 고민이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장례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음식, 음식 독점권 박탈해야 오늘날까지 장례관련 법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더욱이 장례 기간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정해진 법이 없다. 유일하게 '사체는 사후 24시간 이후 매장이나 화장이 가능하다'라는 법령이 있지만 이 또한 1912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 취체규칙>을 여전히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장례식에 최대 지출 비용은 장례식장에서 무조건 선택해서 제공하는 음식 값이다. 다음이 장례식장 대여료다. 장례식장 음식 값으로 2000만원~3000만원이 지출되고 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에도 여전히 제사상 음식 재활용하며 유가족에게 폭리를 취한 장례업자부터 음식 값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보도가 꾸준히 나왔다. ■진짜 망자를 애도하는 장례식으로 거듭나야 유가족들은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고인에 대해 조용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고, 상조회사에서 도우미를 지원하지만 턱 없이 일손이 모자라 음식을 나르느라 2박 3일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장례업체를 개혁해 터무니없이 비싼 삼베 수의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망자의 수의는 집에서 망자가 평소 즐겨 입던 옷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전통장례와 그 의미가 맞다.   또한 장례업체가 시중 음식점 보다 비싸게 제공하고 있는 장례음식의 독점권을 박탈하고, 유가족들이 준비한 음식이나 다과 등으로 검소하게 제공하고 망자를 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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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0
  • [발행인 캄럼] 테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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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9
  • [발행인 칼럼] 테스트 1
    [월간 고종명=발행인 칼럼] 홈페이지 노출을 테스트하기 위한 기사샘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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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9
  • [한국의료] 3. 보험 있어도 돈 없으면 힘들어요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 몇 년 전 A씨 아들은 눈이 살짝 내리는 오후, 학원에서 쉬는 시간 친구들과 잠깐 공원에서 놀다가 움푹 파인 곳에 발목이 끼이면서 발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월간 고종명 김재봉 편집국장   A씨는 아들을 데리고 즉각 가까운 정형외과에 입원절차를 거쳐 아들의 수술을 진행했다. 입원 3일째 되는 날 오전에 수술이 시작됐다. 다행히 학원에서 가입한 보험이 있었고, A씨도 아들의 부상을 대비해 가입했던 보험이 있었다. 병원입원은 먼저 접수창구에서 병원 접수비를 납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진찰을 받거나 수술이 시작도하기 전부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먼저 2~3만 원 정도의 접수비부터 무조건 납부를 해야 한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약 한 달간의 입원생활이 시작됐다. 발목부터 무릎까지 철심을 박아 넣은 상태에서 수술을 위해 상처를 낸 부분이 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치료도 병행됐다. 수술을 포함한 치료비는 100만원에 육박했다. 병원은 중간납부를 해야 한다고 알려줬고, 퇴원 이전에 병원비 전체를 납부해야만 퇴원이 됐다. 문제는 보험처리가 된다고 했지만, 병원비 전체를 환자 또는 보호자가 납부를 하고 증빙서류를 갖춰 신청을 해야만 보험회사에서 병원비로 지출된 비용을 약 한 달 후에 환자 또는 보호자 계좌로 입금해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재정이 부족한 서민들의 경우 보험적용을 받아도 일단 병원비를 자부담해야 보험을 통해서 보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큰돈이 들어가는 병원비 걱정에 보험을 가입했지만, 막상 병원비를 납부할 일이 발생하면 먼저 환자 또는 보호자가 먼저 병원비를 납부해야 보험회사로부터 병원비를 받을 수 있다. 결국 A씨는 아들의 병원비는 먼저 납부하고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각종 증빙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심사를 거쳐 약 한 달 뒤에 병원비를 되돌려 받았다. 제대로 된 보험체계라면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보험회사가 병원에 출동해 사실 확인을 하고, 접수비납부와 병원에서 진료비 납부를 요청할 때마다 중간예납과 퇴원시 진료비 납부 등을 일괄적으로 처리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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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6
  • [한국의료] 2. 돈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스페인어: Pandemia de gripe A (H1N1) de 2009)은 2009년 3월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형 H1N1 아종의 변종에 의해 발생했다. 최초 발병은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를 포함한 3개 주에서 발견됐으며, 몇 주 후 미국에서도 발견됐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월간 고종명 김재봉 편집국장   신종플루에 감염되면 대표적인 증상으로 급성 열성 호흡기 증상 즉 몸에 발열이 난다. 한국에서는 체온이 37.8도를 넘는 것과 다른 증상을 기준으로 의료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종플루 환자의 10-20%는 발열증상이 없거나 약한 발열증세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증상은 급성호흡기 증상(기침·목아픔·콧물·코막힘 중 하나)이며, 오심, 무력감, 식욕부진, 설사, 구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돈 없으면 고열이 나도 진료거부 유명인들부터 대한민국 전국이 신종플루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우리집 큰 아들도 신종플루에 걸렸다. 토요일 저녁부터 기침이 있고 체열이 37~38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외부에 있던 내게 아내의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대로 마스크를 한 채 택시를 타고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진찰을 받으라고 했다.   20분 뒤 아내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한림대학교병원에서 신종플루검사를 받기위해 먼저 1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납부해야 진찰을 해주겠다고 했단다. 아내는 그 당시 5만원의 비용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 인터넷뱅킹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던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측에 양해를 구했지만,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병원은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를 앞에 놓고 고액의 접수비를 먼저 납부하라는 대답만 했다.   결국 아내는 고열에 시달리는 큰 아이를 데리고 동네 ‘ㄱ가정의학병원’을 찾아 독감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진단결과 신종플루 A형으로 판명됐지만 타미플루 처방은 받지 않았다. ‘ㄱ가정의학병원’은 해열제와 적절한 치료방법으로 신종플루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해 좋은 결과를 기록했다.   ■돈만 밝히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30,000원과 3,000원, 이는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과 동네 병원의 진료비 차이다. 똑같은 감기에 걸려도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은 접수비와 진찰료를 포함해 30,000원이 넘는 비용이 청구된다. 하지만 동네 병원은 접수비 항목이 없다. 접수와 동시에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들면 기본 진료비는 3000원이 청구된다.   대학병원은 의과대학 교수들의 특진비를 필수항목으로 추가하고 있다. 교수들의 특진은 선택사항이지만, 대부분 대학병원에서는 교수가 아닌 의사들이 없을 정도다. 진료실마다 ‘교수’ 타이틀을 단 의사들이 진료를 보고, 진료비 청구서에는 ‘특진비’가 자동으로 청구되고 있다. 종합병원에서도 특진비 챙기기는 비슷하다.   촌각을 다루는 위급상황에 병원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해도 먼저 치료가 아닌, 접수를 이야기한다. 의료비대불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병원들은 창구에서 접수비 납부를 할 것을 안내한다.   실제 많은 경험자들은 응급상황에서 병원을 찾았지만, 응급의료서비스는 받지도 못하고, 응급실 담당자에 친절한 접수비 납부 안내를 먼저 받는 경우가 많다. 병원 담당자는 보호자 중 한 명에게 친절하게 창구에 가서 접수비 납부를 확인해달라고 안내한다.   응급상황에 실려 온 환자의 치료가 우선인지, 진료비 납부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인지 모르는 대한민국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유물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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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2
  • [한국의료] 1. 돈 없어도 병원 가서 편안하게 치료 받아요
    [월간 고종명=김재봉 기자]1993년부터 5년간 영국에서 살면서 놀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암이 걸려서 수술을 하든, 1년 365일을 병원에 입원을 해도 병원비가 무료라는 사실이었다. 월간 고종명 김재봉 편집국장     또한 병이 걸려야 병원에 가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동네에 의사들이 일정한 가정을 묶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매달 정해진 날에 가정주치의를 만나 면담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받았고, 모든 질병관리는 사전 예방차원에서 다루고 있어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없앴다는 것이었다.   의료뿐만 아니라, 교육도 무료였다. 내가 살던 당시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무상교육(한국인도 영주권만 있으면 대학도 무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같이 살던 선배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니 우편으로 안내문이 먼저 발송되고 약속된 날짜에 맞춰 담당자들이 가정을 방문해 아이가 입학할 유치원부터 교육과정 및 유치원과 초등학교 연계내용 등 아이가 영국에서 받을 교육에 대해 상세하게 상담을 해주고 돌아갔다.   어느 날은 위경련이 새벽에 일어나 ‘999’으로 전화를 했다. 구급대가 집에 도착해 내가 거주하던 동네 중급병원으로 이송했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3명의 대원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그 중 한 명이 계속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 사태를 파악하고, 병원에 도착하자 담당의에게 그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물론 병원비는 없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퇴원을 했다. 퇴원하기 전 병원에서는 처방전을 발급하고 위층에 올라가 약을 타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다만 약값은 약 5파운드 정도 납부했는데, 내가 살던 당시 영국의 1파운드는 한국 돈으로 약 1200원 정도 했다. 하지만 영국 런던에서 5파운드는 1파운드 동전 5개의 가치였다.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의료서비스를 유학생이란 신분으로 인해 대략 6파운드의 국가의료보험비(NHS) 정도만 납부해도 영국인들과 동일하게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의료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어도 유학생비자가 있다는 것 하나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보험이 있어도 환자가 먼저 병원에 진료비를 납부하고 나중에 보험으로 처리하는 일도 없고, 한국처럼 각종 민간보험을 통해 온갖 질병에 관한 보험을 추가로 가입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영국에서 5년을 사는 동안 ‘999’으로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간 일이 두 번 있었다. 걸어서 5분이면 도서관이 있듯이 병원도 일정한 구역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도록 위치해 있어서 구급차를 타고 오래시간 달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한 가정을 붕괴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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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0
  • [김재봉 칼럼] 志于學에서 考終命까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월간 고종명=김재봉 편집국장]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從心所欲不踰矩라.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춘추전국시대 사람이니 그 당시 인생 70대면 장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역을 하면 “나는 십오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그래서 삼십대에 홀로설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사십대에는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 오십에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됐으며, 육십에는 귀가 순해졌으며, 칠십에는 욕심대로 행동을 해도 결코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없었다”란 의미다.   그럼 먼저 공자가 나이를 이야기한 위의 말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자. ‘吾十有五而志于學’ 십오세라고 했지만 이는 십대에서 이십대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나이임을 알려주는 말이다. 이 시기를 잘 채우지 못하면 삼십이 되어서도 결코 모든 일에 홀로서기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三十而立’ 이란 말을 살펴보자. 먼저 독자는 이 말 또한 공자가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그 시대는 남자 중심의 세계였으며, 공자는 남자였다는 것을 당연히 의미한다. 최소한 한 가정을 책임지고 뜻을 세워 나라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삼십대가 됐을 때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충족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뜻을 펼쳐나가는데 늘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어간다고 느낄 때 어디선가 유혹의 손길이 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40대에 이런저런 사회적 유혹은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사회초년생을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뜻을 주장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 때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나라가 섰다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한 나라가 사라지기도 했다. 춘천전국시대 이전에는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제후국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나라를 중심으로 제후국들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조성하고 있을 때 기본 교재 역할을 한 것이 주나라의 예법을 기록한 주례(周禮)였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러움은 주나라의 예법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 오십이 됐을 때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주례를 회복해 천하를 태평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자의 ‘五十而知天命’에서 지천명(知天命)은 단순히 남자가 오십이 됐을 때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 즉 주례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정치상황에서도 공자가 생각했던 지천명(知天命)은 어느 나라에서나 반드시 필요하다. 백성은 걱정염려 없이 평안한 삶을 바라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지천명(知天命)을 이루기 위해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육십이 되어서도 지천명(知天命)은 이루지 못했다. 그런 공자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천하를 유리방황하지만, 듣는 귀는 이제 점점 익어가는 벼처럼 무엇을 들어도 순하게 듣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공자는 ‘六十而耳順’이라고 언급하며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를 보여주곤 한다.   어쩌면 구약성경의 솔로몬이 전도서를 지으며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것을 공자도 느꼈는지 모르겠다. 공자는 드디어 칠십세가 되어서 ‘七十從心所欲不踰矩’라고 말한다. 마음 속에서 어떤 욕구가 일어나 행동을 해도 결코 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종묘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 시간은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누구도 이탈할 수 없는 경기장에 놓인 것과 같다.   인간의 수명이 많이 길어져 이제는 많은 이들이 칠십을 넘어 팔순과 구순을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과학은 얼마나 많이 발전해 있을지 가늠조차 힘든 빠른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수명이 얼마나 늘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는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기본적인 욕구의 마지막 종착지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제명대로 살다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인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마지막 소박한 꿈이며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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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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